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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과 여순사건이 동아시아 냉전에 미친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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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문학연구소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4-04-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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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주간 맞아 순천대-제주대, 공동학술대회 개최
'기어츠상' 수상 권헌익 교수 및 국내외 역사학자 참여
'진정한 정치적 행위' 가치 재조명부터 다양한 주제 논의
두 사건과 오키나와의 기지화, 점령정책 등 연관성 고찰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순천대 인문학술원은 지난달 29일 제주대에서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제주4.3, 여순10.19' 공동학술대회을 열었다. 박사라 기자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순천대 인문학술원은 지난달 29일 제주대에서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제주4.3, 여순10.19' 공동학술대회을 열었다. 박사라 기자
제주4.3사건 76주기를 맞아 지난 달 29일 제주대학교에서는 제주4·3과 여순10·19사건(이하 여순사건)을 동아시아 냉전체제 속에서 살펴보는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순천대 인문학술원(원장 강성호)과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원장 김치완)은 제주4·3과 여순사건이 동아시아 냉전 전개에 미친 영향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기 위해 이번 공동학술대회를 마련했다.

토론회에는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와 요시자와 후미토지니 니키타국제정보대학 교수, 나리타 치히로 리츠메이칸대학 교수, 권준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교수, 유지아 원광대학교 교수, 예대열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연구교수 등이 참가했다.
 

1차대전 100주년 기념식이 던지는 화해의 메시지 '주목'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가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가 기조 발표를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권헌익 캠프리지대학교 석좌교수는 '1919의 세계, 1947~1948의 제주'란 주제의 기조 발표에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지에 대해 주목했다.

권 교수는 "상-상포리앙 전사자 묘지는 국가별로 구분되어 있는 1차대전 전사자 묘지와 달리, 독일군과 영연방군이 함께 안장돼 있는 혼합 묘지"라며 "2014년 8월 영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왕실 대표들이 이곳에서 100주년 주간을 시작했고 이는 화해와 유럽의 새로운 정체성, 유럽연합의 정체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전 총리가 정전을 기념해 콩피엔 숲에서 재현했던 종전 서명식을 소개했다.

지난 20세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두 나라 정상은 지난 2018년 11월 10일 1차대전(1914~1918) 종전협정 서명식이 열렸던 열차를 본떠 제작한  파리 북부 근교 모형 열차 안에서 방명록에 함께 서명한 뒤 뜨겁게 손을 맞잡아 두 나라의 변화된 관계를 보여준 바 있다.
 
이와 관련 권 교수는 "1차대전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유럽 지식인들은 '전쟁이 끝난 지 3세대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소통 가능한 기억인가?', '이 역사는 앞으로 어떻게 창의적으로 기억되고 기념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는 역사에 대한 기억과 해석에 대한 갈등의 혼재로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제주4·3과 여순사건에 여러 의미를 시사했다.

권 교수는 1차대전 관련 편지 및 기타 기념품 수집을 활성화하기 위해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소와 국립도서관이 진행한 캠페인에 자신의 조상들이 전쟁에 동원됐던 북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 출신 프랑스 가족들이 열렬히 환호했던 일을 또 다른 사례로 전했다.

그러면서 "화해를 위해서는 역사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며 "1차대전의 글로벌한 성격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전쟁의 현실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존 유럽사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전 총리. 권헌익 교수 제공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전 총리. 권헌익 교수 제공
또 그는 3·1운동과 제주4·3, 여순사건을 '진정한 정치적 행동'이라 규명했다.

그는 "3·1운동에 대한 한국의 대중적 역사 담론 중 '평화로운 행진', '남녀노소'라는 관용구가 두드러진다"며 "남녀노소라는 표현에서 알수 있듯이 다양한 개별 정치 주체들이 공동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 중요한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19년 3월의 일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상상한 진정한 정치적 행동이 무엇인지에 근접해 있다"며 "1947년 3·1절을 기념해 남한을 점령하고 있던 미군정에 항의하기 위해 봉기한 제주4·3도 자발적인 행위였으며, 평화적이고 남녀노소가 참여한 진정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기에서 그는 3·1운동에 참가했던 경북 안동의 한 할머니의 평화로운 표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권헌익 교수는 인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기어츠상을 수상한 권위있는 학자이며,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불안정한 남한 정세, 미군 오키나와 기지화 결정에 영향  

나리타 치히로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제주대 제공

나리타 치히로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제주대 제공
나리타 치히로 리츠메이칸대학 교수는 '오키나와의 기지화 과정과 제주4·3, 여순10·19' 주제발표를 통해 1948년 발생한 제주 4·3과 여순사건이 미군의 오키나와의 군사 요새화 결정에 미친 연관성을전했다.
 
치히로 교수는 "1947년 6월 미국 정부는 오키나와에 있는 여러 시설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려고 계획했고, 당시 한반도에서는 8월 대한민국,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차례로 생겨나는 정세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시기 일본은 소련과 동북아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갖길 원했는데, 이 점이 미군이 조선의 군사 전략을 낮게 보는 견해와 일치하면서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 속에서 오키나와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고 했다.

또 "한반도 남부를 점령한 미국이 남부에서만 5월에 총선을 실시하고 과도정부를 설치한 뒤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는 계획을 세우면서(제주4·3, 여순사건 발생 전) 1946~1947년 오키나와 기지 건설은 정체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과 제주 4·3, 여순사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후 1948년 4월 제주도에서 경찰과 우익단체의 횡포를 배경으로 총선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고 그해 10월 여수의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제주도 출동을 거부해 여순사건이 일어나면서 주한미군 철수가 연기됐다"며 "이들 사건으로 미국은 일본의 경제부흥을 통한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위해 오키나와를 군사화, 장기보유 할 것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치히로 교수는 "재조선 미국육군사령부 군정청이 종료되면서 조선에서의 근무 경험을 가진 미국 군인들이 오키나와의 군정에 관여하게 됐고, 오키나와 기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제주4·3에 대한 '반공 인식', 美 일본 점령화 정책 전환 주도 

원광대 유지아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순천대학교 제공

원광대 유지아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순천대학교 제공
유지아 원광대 교수는 일본의 점렴정책 전환부터 도교재판까지 영향을 미친 1948년 동북아 정세와 제주4.3사건에 주목했다.

유 교수는 '제주4.3 이후 동북아 냉전의 시작과 GHQ의 정책 전환'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의 전환에 영향을 미친 외부적인 요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 군정의 반공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일 조선인을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에 대한 탄압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었다"며 "제주4.3 이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상황에서 그 부분을 막으려는 GHQ의 노력도 눈에 띄었다"고 덧붙였다.

또 유 교수는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과 맞물려 전범 재판의 정책도 전면수정 된 점을 짚었다.

유 교수는 "점령정책의 전환을 일본 내부에서 살펴볼 때 가장 큰 변화는 전범 재판의 정책수정"이라며 "한반도 정세 변화에 맞물리면서 미국은 당시 극동국제군사재판소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전쟁범죄자를 심판했던 일명 '도쿄재판'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였다"고 설명했다.

조기 종결된 도교재판과 관련해서는 "위안부, 강제징용과 같은 피해자가 제외됐고 천황은 물론 도조 히데키가 이끈 통제파 이외에 전쟁을 추진한 기업인, 정치인 등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며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궁극적인 책임을 묻지 못한 건 동북아 냉전체제에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결과가 일본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갈등을 야기했고, 동북아시아의 냉전 체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그 결과 동북아시아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관련한 역사 문제는 시대를 넘어 또 다른 역사 갈등을 조장하게 됐다"며 "2천 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데 대한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현재 동아시아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순천대 인문학술원과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제주대에서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제주4.3 여순10.19'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제주대 제공

순천대 인문학술원과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제주대에서 '동아시아 냉전체제와 제주4.3 여순10.19'를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제주대 제공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 김치완 제주대(철학과) 교수는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건국절 논란의 문제점을 제주4·3과 여순사건을 통해서 비판하기도 했다.

또, 현재 편파 구성 논란이 일고 있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에 대해서도 "진상조서보고서는 희생자 지원 결정의 주요 자료가 되기 때문에 재구성까지 촉구하는 유족들의 문제 제기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권준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이동하는 나무-제주감귤 농업의 등장과 확산'에 대한 발표에서 1965년 한일외교가 정상화 이후 제주와 재일제주인이 다시 연결된 시기 등장한 제주 감귤 나무의 사회사를 고찰했다.

예대열 순천대 인문학술원 연구교수는 "열전의 경험과 냉전의 경계 월경(越境)-순천 출신 조명훈의 생애와 독일에서의 통일운동'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냉전이 지배하고 있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조명훈이 여순사건으로 군사재판을 받고 이후 재독 정치학자이자 통일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았던 삷을 조명했다.

한편 순천대 인문학술원과 제주대 탐라문화원은 지난 6년 간 6차례에 걸쳐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해 왔다. 두 기관은 이번 학술대회까지 논의된 내용을 두 권의 연구총서로 출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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